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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의 얼굴,
시선의 정치학


임주영(이반림) 씀.


 ‘어딘가 불편한 조각.’
 최성덕 작가의 포트폴리오를 처음 펼쳐보며 내 노트에 적어 넣은 문장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시각예술이 요구하는 일차원적 감각에 머무른 반응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작가노트와 작품세계를 완전히 분석하기보다, 우선적으로 직관적 인상에 ‘시선’을 두는 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영국 비평가 존 버거는 『Ways of Seeing』에서 “보는 방식은 단순한 감각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구조를 드러낸다”고 말한 바 있다. 최성덕의 연작 「Ways of Seeing」은 이 명제를 과일이라는 평범한 사물을 통해 시각화한다. 그는 시장에서 버려지는 ‘못생긴 과일’을 출발점으로 삼아, 사회가 타인을 외형만으로 판단하고 도태시키는 구조를 은유한다. 과일의 표면은 인간의 얼굴이자 사회의 초상으로 변환되고, 그 위에 얹힌 선글라스는 타인의 시선을 반사하면서 동시에 차단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보는 행위 자체가 권력이라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환기하는 것이다.

 그의 회화에서 반복되는 심리학적 용어 「합리화」(2024), 「투사」(2025), 「억압」(2025)는 개인의 내면에서 작동하는 방어기제를 드러낸다. 화면 속 형상은 과일과 얼굴이 뒤섞인 기묘한 모습으로 등장하며, 사회적 시선에 적응하고 저항하는 인간의 불안을 형상화한다. 명료한 제목은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달하지만, 동시에 관객의 해석을 하나의 틀에 가두는 위험을 수반한다. 작품이 심리학 개념의 삽화처럼 읽히지 않도록, 그는 화면의 질감과 색채에서 모호함을 유지한다. 바로 이 긴장이 그의 작업을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예술적 체험으로 남게 한다.


타자의 시선(1) _Acrylic on Canvas _25.8x17.9(cm) _2024
 「타자의 시선」 연작(2024)은 긴장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세 점으로 구성된 연작은 크기와 구성이 달라 동일한 문제의식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한다. 화면 속 선글라스는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실제로 빛이 반사되는 듯 표현하여, 사회적 시선의 불편함을 관객이 감각적으로 체험하도록 만든다. 「군중심리」(2024)와 「정체성」(2024)은 개인의 불안을 집단적 압력과 연결시키며, 타인의 시선이 단순히 개인 간의 관계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 속에서 증폭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의 전시 이력은 이러한 문제의식이 반복적으로 실험되었음을 보여준다. 설미재미술관(2023), 양평문화재단 생활문화센터(2024), 아트버디 더 럭셔리(2024), 양평군청 로비(2025) 등 서로 다른 성격의 공간에서 같은 제목으로 이어진 전시는, 동일한 주제를 다양한 맥락에서 실험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공간의 차이가 형식적 변주로 충분히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전시 공간의 제도적 성격과 행정, 지역 공동체, 상업적 맥락이 작품 형식 속으로 구체적으로 번역될 때, 「Ways of Seeing」은 단순한 반복을 넘어 제도 비평적 실험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맥락 속에서 볼 때, 박이소, 최정화와 같은 작가들은 일상 오브제를 사회학적 차원에서 탐구했다면, 최성덕은 과일을 심리학적·존재론적 차원으로 다룬다. 이는 그의 차별점이지만, 동시에 심리학적 용어의 직접적 차용은 작품을 삽화적으로 만들 위험도 있다. 또한 카프카와 보스 같은 서구적 참조는 그의 작업을 환상적으로 확장시키지만, 한국적 현실이나 지역적 맥락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는 한계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ays of Seeing」은 동시대 한국 미술에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겉모습이 전부일까?”라는 집요한 물음이며, 이 질문은 단순히 미학적 차원이 아니라 윤리적·사회적 차원에 걸쳐 있다. 앞으로 그의 작업이 매체적 확장과 장소적 맥락의 활용, 지역적 구체성을 끌어안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Ways of Seeing」은 단순히 ‘보는 방식’을 묘사하는 작업이 아니라, 관객 스스로의 시선을 재구성하게 만드는 체험적 장치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과일은 결국 사회의 얼굴이고, 그 얼굴은 곧 우리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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