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임주영(이반림) 씀.
그렇기에 신진 작가들의 작업은 단순히 ‘새로움’의 가치로 소비되지 않는다. 나는 그 시도를 일종의 저항으로 본다. 작품은 작은 몸짓일 수 있지만, 이 시대에 여전히 예술이 질문을 던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관객으로서 내가 그들의 작업 앞에서 경험하는 감동은 작품이 완결된 어떤 결과물이어서가 아니라, 여전히 모색하고, 헤매고, 질문하는 과정에 있다. 어쩌면 신진 작가를 바라본다는 행위는 아직 규정되지 않은 미래의 예술과 조우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봄을 맞이하는 법_장지에 채색_193x336(cm)_2023_김정빈
*
김정빈의 작업은 ‘사라짐’이라는 감각적 경험을 중심에 두지만, 사라짐은 단순한 소멸이 아니다. 오히려 흔적처럼 잔존하며, 지우려 할수록 선명해지고, 비워진 자리가 매개로 변환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작가가 설정한 “미망(未忘)”은 곧,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기억. 흐릿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이미지의 상태를 응축한다.
작품 속 ‘투명한 구멍’과 ‘파편화된 흔적’은 결여이자 동시에 통로다. 그것들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배경을 관통시키는 창처럼 기능하며, 잔존과 소멸이 교차하는 긴장의 장을 형성한다. 결국 그의 회화는 채워짐과 비워짐, 부재와 존재가 맞물리는 지점에서 관객에게 시각적·존재론적 사유를 요청한다.
『봄을 맞이하는 법」(2023)과 『투명한 자리」(2025) 같은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시간성’의 은유이다. 얼음이 녹고 흔적이 픽셀화되며 흐려지는 과정은 기억이 보존되지 못하고 파편으로 남는 인간적 경험을 환기한다. 동시에 파편은 새로운 층위의 이미지로 자리한다. 그의 화면은 ‘보존과 망각’이라는 이중적 시간성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 전통 매체인 장지 위에 채색을 반복하는 행위 역시 중요하다. 장지의 섬세한 결을 통해 빛과 색이 투과되며, 비눗방울 같은 형상과 투명한 색채는 일상의 감각을 넘어 ‘연약하지만 존재하는 것’의 자리를 드러낸다. 그는 소품과 대작을 오가며, 『불행의 조각」(2025) 같은 작업에서까지 일관되게 부재와 잔존의 모티프를 변주한다.
김정빈의 회화는 단순한 시각적 이미지의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과 소멸을 탐구하는 실천이며, 사라짐의 불가피성과 잔존의 고집 사이에서 발생하는 역설을 드러낸다. 이는 단지 미학적 효과를 넘어, 인간이 세계와 맺는 관계의 불완전성을 환기하는 존재론적 질문으로 확장된다. 따라서 김정빈의 회화는 단순히 ‘새롭다’라는 가치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에게 묻는다. “사라졌다고 믿는 것들은, 정말 사라진 것인가?” 화면 속 구멍과 흔적은 부재와 잔존을 동시에 증명하며, 우리가 세계를 다시금 사유하도록 이끈다. 그것은 작은 흔적 속에서도 의미가 여전히 남아 있음을 드러내는, 예술적 저항의 몸짓이다.
마지막으로, 김정빈 작가를 비롯한 젊은 작가들에게 유의를 남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과 긴밀히 맞닿은 작가 노트를 써야 한다. 감성에만 기대어 서술하다 보면 작업과의 연결 고리가 약해지고, 관객에게는 오히려 이해의 장벽으로 다가오기 쉽다. 이는 관객에게 과도한 친절을 요구하자는 뜻이 아니다. 다만 작가의 작품관을 드러내고, 작업을 바라보는 최소한의 문맥을 제공하는 텍스트가 필요하다. 관객이 단번에 작가의 의미를 파악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언어로 쓰인 노트는 작품에 대한 몰입을 깊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흐트러뜨리는 느낌을 줄 수 있다.